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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행, 남북이 함께 기억하는 나눔의 상징

평양의 대동강에 돌다리를 놓고, 학교와 공회당을 세운 일제강점기 여성 자선사업가 백선행(1848~1933)은 분단 이후 남과 북이 각자의 이념으로 해석하면서도 모두 존경하는 드문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조건 없는 나눔'이라는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정치와 제도의 길이 막힌 지금 남북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소프트파워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평정의로운평화 에디터·2026.09.22.

먼저 읽는 세 줄

  1. 1. 백선행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며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고, 한국 여성 최초로 사회장을 치렀다.
  2. 2. 남한 교회와 북한 모두 그녀를 각자의 이념 체제 안에서 존경하며, 상징적 지위를 국가 차원에서 보존하고 있다.
  3. 3. 정치와 제도가 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건 없는 나눔의 가치는 남북 관계를 열 수 있는 실질적 통로가 될 수 있는가.
[평화칼럼] 분단과 이념을 넘어선 나눔의 기억, ‘백선행 플랫폼’을 향하여(2026. 9. 18) : 2025 평화칼럼
이미지: cnpu.kr

평양의 자선사업가, 한 여인의 시간

백선행은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삯 일과 행상, 철저한 절약으로 큰 재산을 모았다. 환갑 무렵부터는 그 재산을 사회에 내놓기 시작해 대동강에 돌다리를 놓았고, 광성고보·숭현 여학교·창덕 학교 같은 민족 교육기관에 많은 토지와 재산을 기부했다. 조선인을 위한 공회당인 백선행 기념관도 세웠다.

1933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국 여성 최초로 사회장이 치러진 것은, 한 개인이 평생 모은 재산을 조건 없이 사회에 돌려준 삶이 당시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줬음을 보여준다. 그의 활동 무대는 일제강점기 평양이었고, 기독교인과 자본가라는 두 정체성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했다.

흥미로운 점은 종교를 아편이라 부르고 사유재산을 없앤 북한 체제가 가장 경계해 온 두 정체성임을 감안하면 드문 일이다. 그런데도 남한 교회는 그를 '청지기 신앙의 본보기', '평양 기독교 사학의 대모'로 기려 왔고, 북한 역시 '양심적인 민족 자본가', '반일 애국자'로 높여 왔다. 평양의 기념관과 동상은 국가 차원에서 보존·정비되었고, 기념주화와 우표에 얼굴이 새겨지기도 했다.

이렇게 갈라진 기억 속에서도 백선행은 남과 북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남았다. 같은 시대를 산 인물이 한쪽에서는 영웅이, 다른 쪽에서는 부역자가 되곤 했던 분단의 역사 속에서 드문 예외라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왜 중요한가, 공유된 유산의 등장

남과 북은 '백선행'이라는 하나의 삶을 각자의 언어로 옮겨 받았다. 남한 교회는 그의 헌신을 '모든 소유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청지기 신앙으로 해석했고, 북한은 남을 착취하지 않고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사회에 바친 일을 사회주의적 공공성의 앞선 실천으로 읽었다. 북한의 이야기에서는 신앙이 지워졌고, 남한의 이야기에서는 민족운동의 맥락이 옅어졌다.

그래도 양쪽 모두 끝내 지우지 못한 핵심이 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조건 없이 사회에 돌려준 삶, 곧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저한 실천이다. 이는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공유된 유산(shared heritage)'이다.

정치와 제도의 길이 막힌 지금, 백선행을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창한 정치 구호나 교리의 언어 대신 '조건 없는 나눔'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실천을 앞세운다면, 백선행은 막힌 대화의 물꼬를 트는 소프트파워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 플랫폼은 거창한 모습일 필요가 없다. 백선행의 삶과 나눔을 함께 연구하고 기록하는 일,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금이나 나눔 사업을 만드는 일이 모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가

백선행의 상징성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의 신앙은 말보다 삶으로, 설교보다 학교와 공회당으로 세상에 먼저 닿았다. 그래서 신앙을 부정하는 체제조차 그 헌신만큼은 외면하지 못했다.

한때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만큼 복음의 불길이 뜨거웠던 곳이다. 그 불길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것은 교회가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열며 가난한 이웃의 곁을 지켰기 때문이다. 백선행은 그 시대 신앙이 가장 아름답게 열매 맺은 모습이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북녘을 향해 다시 말을 건네려 한다면,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교회의 건물이 아니라 이웃의 삶을 세우고, 우리 편을 증명하기보다 약한 이를 섬길 때 복음은 이념의 벽을 넘는다.

탈북민과 가난한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섬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한국교회의 현장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통일을 위한 기도가 진심이라면, 그 기도는 지금 우리 곁의 이웃을 향한实际行动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제도와 현장 대응의 가능성

백선행의 이름을 딴 장학금이나 나눔 사업을 만드는 것이 제도적 대응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남한 교회와 북한이 각자 그를 존경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은 조금씩 열리기 마련이다.

언젠가 남과 북의 연구자와 시민이 평양의 기념관과 서울의 강연장에서 같은 인물을 함께 이야기하는 일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것은 거창한 정치 합의가 아닌, 시민과 학자의 공동 연구와 기록에서 시작될 수 있는 실질적 대화의 문이다.

북한에서 백선행의 위상이 특히 굳건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그를 높이 평가했고, 그가 기부한 창덕 학교는 김일성이 다닌 학교다. 최고지도자의 개인사와 맞닿아 있으니 북한 안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쉽게 뒤집힐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남북 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되고 민족과 통일이라는 말이 지워 가는 지금도 백선행이라는 상징이 흔들리지 않는 까닭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 순수한 상징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남북은 백선행을 각자의 이념으로 해석하면서 신앙이나 민족운동의 맥락을 서로 지워버린다. 이런 '기억의 번역'은 공유를 가능하게 하지만, 한쪽의 핵심 가치가 소외되는 부작용도 낳는다.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는 가운데, 백선행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까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가 남은 문제다. 상징이 특정 국가의 정당성 강조 도구로 변질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남한 교회는 그를 '청지기 신앙'의 본보기으로 높이지만, 실제 교회의 사회적 책임 수행은 어떠한지 비교해야 한다. 말과 삶의 괴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백선행의 가치는 Hollow(공허한) 상징에 그칠 수 있다.

분단의 밤이 깊어 가는 지금, 한 세기 전 평양의 한 여인이 남긴 조용한 헌신이 한국교회에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청지기로 살고 있는가, 소유자로 살고 있는가.

독자가 기억할 관점

백선행은 남과 북이 각자의 정체성과 이념을 내려놓지 않고도 함께 마주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공유된 유산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사람을 존경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은 조금씩 열리기 마련이다.

'청지기 신앙'과 '사회주의적 공공성'은 이념적으로 다르지만, 조건 없는 나눔이라는 실천에서는 만나게 된다. 이 지점을 주목하는 것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오늘 이 기사가 남기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소유를 내려놓고 이웃을 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백선행의 삶이 보여준 것처럼, 신앙이나 이념을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하는 일이 남북을 막론하고 가장 절실한 때다.

분단과 이념을 넘어선 나눔의 기억이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백선행 플랫폼은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 된다. 독자 여러분이 곁의 가난한 이웃을 향한 작은 실천으로 시작해 보기를 제안한다.

이 기사에 나온 용어

청지기 신앙

하나님이 소유한 것을 사람이 관리하는 역할로 보는 신앙 개념으로, 내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쓰라는 뜻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유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과 나눔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기억의 번역

같은 인물이나 사건을 남과 북이 각자의 이념 언어로 다르게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이 기사의 참고자료

이 기사는 공개 자료를 교차 확인한 뒤 정의로운평화가 새로 기획·작성한 해설 기사입니다.